[공익활동기자단] 작은 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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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가 심각한 시대에 다양성의 가치를 내세우며 교육과 연구, 캠페인을 하는 단체가 있다. 다양성훈련을 통해 청소년과 시민들을 만나며 차별과 혐오를 끝내는 주체로 초대하고자 고군분투하는 한국다양성연구소 김지학 소장을 만났다.






Q. 자기소개와 함께 한국다양성연구소는 어떤 단체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지학이라고 합니다. 한국다양성연구소는 다양성훈련이라는 참여형, 대화형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인종, 민족, 성별, 성별정체성, 성적지향, 장애, 외모, 소득수준, 학력, 학벌, 지역, 종교 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정체성 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특권과 억압을 인지하고 어떻게 평등한 세상을 만들지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다양성훈련은 이 사회가 “정상” 또는 “표준”이라고 여기는 “기준”에 우리 모두를 맞춰 살게끔 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하고 획일적인 기준에 의해 발생하는 차별, 억압, 폭력, 혐오와 같은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해 갈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입니다. 나 역시 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의해 ‘차별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게 초대하는 것이 다양성훈련의 핵심이에요.



Q. 다루는 내용이 다양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다양성은 단순히 ‘여러 가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사회 구조 속에서 권력 관계를 볼 수 있게 하는 관점이에요. 모든 사람은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어떤 정체성에 의해서는 누군가를 차별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정체성에 의해서는 내가 차별을 받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의 정체성만 한정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과 사회 구조를 깨닫고 평등한 사회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교차하는 권력’을 깨닫고 자신의 역할을 찾게 한다는 접근이 연구소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Q. 활동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나요?

연구소는 교육, 캠페인, 연구 세 가지 영역의 활동을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을 다양성훈련이라고 부릅니다. 15~20분 정도의 활동을 하고 그 활동을 통해 발견한 점, 느낀 점, 적용하고 싶은 점 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방식입니다. 일방적인 강의의 형태가 아닌 참여형, 대화형 교육인 다양성훈련은 청소년과는 2박 3일 캠프로 진행합니다. 비청소년(성인)의 경우에는 하루 7~8시간 정도 3~4일의 숙박없는 워크샵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대표적인 캠페인 활동 중 하나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화장실 캠페인입니다. 화장실은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정상’을 규율하는 획일적인 공간이에요.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공화장실의 모습은 영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하고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점에서 성인중심적이며,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의 수가 현저히 적거나 있어도 사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장애인중심적입니다. 특히 여성과 남성으로 분리된 성별이분법적인 화장실은 자신의 성별정체성(자신이 인지하는 성별)과 지정성별(성기 모양으로 정해진 성별)이 다른 사람들의 화장실 사용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나이, 장애유무, 성별, 성별정체성 등 어떤 이유로도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캠페인입니다.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편하게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의 필요성에 대해서 연구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어요.


다양성 훈련이란? https://diversity.campaignus.me/training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란? https://diversity.campaignus.me/toilet_about
성공회대학교에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위한 서명운동
https://docs.google.com/forms/d/e/1FAIpQLSfuScbf38dLHbF35e3poVlnq8yaIk7lCuf9u_t3-uCguN6sSw/viewform



Q. 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 ‘공부해야 한다’는 소리를 부모님께 많이 듣고 자랐어요. 학원과 과외를 뺑뺑이 돌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삶의 활력이 없고 우울했습니다. 원치않는 분야의 공부를 해야했고 대학에 진학해서도 적응하지 못했어요. 군대를 제대하면서 도저히 복학은 못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저처럼 우울한 삶을 살고 있을 청소년들을 위한 상담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유학을 가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 때 ‘편견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부끄럽게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차별과 인종차별이라는 문제에 눈을 떴습니다. 인간을 피부색이나 성별 등의 피상적인 기준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차별은 권력이 작동하는 모든 상황, 모든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현실을 알았어요. 그 후, 전문적으로 인간의 다양성과 인권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양성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다양성 훈련 기관인 NCCJ(National Conference for Community and Justice)에서 일하면서 다양성훈련과 다양성 캠페인을 직접 진행하면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한국에서 많은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다양성훈련을 접할 기회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Q. 혐오문제와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는 시대에 다양성 훈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시는지?

최근 확실히 교실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수업 중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주변에서 친구들이 ‘이상한 애’ 취급을 했는데, 요즘에는 다같이 동조하는 분위기가 됐어요.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서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혐오표현이 빠르게 전파되고 있기도 하고요, 정치인들이 혐오발언들을 하면서 혐오표현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하지만 해결 방법은 언제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차하는 권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 탓하기가 아닌 진짜 문제를 발견하는 역량을 갖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눈을 몸을 움직이고 얼굴을 마주하고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통해 상호배움을 얻어가는 방식이 되는 것이 좋습니다. 저희가 ‘교차하는 권력’에 대해 강조하는 단체라고 설명했듯이 내가 받는 차별이 존재하고 동시에 내가 특권그룹에 속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작업이 중요해요. 예를 들면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남성들 역시 ‘남성이 아닌 다른 사회적 정체성에 의해서’ 사회에서 받는 차별과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남성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남성 청소년들에게 ‘남자로서 받는 피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으면 군대, 장시간 노동, 높은 산업재해율 등의 답변을 합니다. 그럴 때는 그것이 남성이기 때문인지 군대와 일터에서 사람이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여성이 남성을 차별하거나 착취하는 게 아니라 자본가와 국가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것을 찾아냅니다. 그럴 때 내가 가진 여러 정체성들 중에서 나에게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게 할 수 있는 정체성도 있듯이 남성이기에 갖는 권력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게 아닌 사실 진짜 문제는 사회 구조에 있다는 것을 알게끔 도와주는 것입니다. 청소년들을 만날 때 청소년들의 생각에 공감하고 경청하면서 대화하고 질문을 던지면서 대답을 이끌어 가다 보면, 청소년들은 스스로 답을 찾아 내더라고요. ‘사고의 전환’이나 ‘삶의 변화’같은 큰 변화들도 그런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Q. 활동을 하며 보람있고,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다양성훈련을 할 때 청소년들이 모여 대화를 하면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터져 나올 때가 많아요. 활동 중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데, 그 시간에 함께 참여했던 여성 청소년이 갑자기 ‘나는 호모포비아입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친 적이 있어요. 그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냐고 물었더니 뜻은 모르지만 교회에서 성소수자 이야기가 나오면 그렇게 ‘강력히 선포해야 한다’고 배웠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들어봤더니, 어렸을 때 가난해서 밥도 못먹고 그랬는데 교회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등 교회에서 도와준 게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전적으로 신뢰, 의지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 저희 스텝 중에 동성애자 남성인 스텝이 있었는데, ‘당신이 말하는 성소수자가 바로 나다. 그리고 당신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니 정말 속상하다’며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이 성소수자라는 걸 알게 된 그 청소년은 ‘성소수자는 다 괴물인 줄 알았다’면서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고, 둘은 서로를 안아주었어요. 2박 3일이라는 기간을 함께 하면서 여성 청소년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남성 스태프는 빈곤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 강의를 하면서 16주라는 기간 동안 학생들과 만나다보면 제가 다루는 문제에 대해서 회피하던 학생들도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을 목격하곤 합니다. 학생의 생각이 점점 달라지는 게 관찰될 때 보람있다고 느낍니다. 저 혼자만의 힘으로 바뀐 것은 아니겠지만, 한 사람의 생각과 삶의 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기뻐요.


Q.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작은 비영리단체, 특히 저희처럼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큽니다. 저희 상임활동가가 총 3명인데, 후원으로 들어오는 재정 상황으로는 1.5명분의 월급만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에요. 연구소 활동가들이 외부지원 사업을 수행하거나 제가 특강에 나가는 등으로 월급을 충당해야 하다 보니 인건비 문제 때문에 지속가능성이 부족하다보니 힘든 것 같습니다. 달리 개인적으로 힘든 점이라고 한다면, 현장에서 변화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쁘지만 매일 미디어에 나오는 혐오 범죄를 보고 있으면 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것 같아요. 이렇게 활동해도 아직 세상은 변하지 않는구나 싶어 지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사건에 지치지 않고 변화가 느려 보여도 사실은 굉장히 빠르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고 있습니다. 2016년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한국 사회의 성평등 인식은 엄청나게 바뀌었거든요. 법은 바뀌지 않아도 사람들의 인식 수준은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변화가 더딘 것뿐, 세상은 강력히 바뀔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다 함께 움직이자는 마음입니다.


Q. 활동하면서 정책적 지원이나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은?

국가나 지자체에서는 일자리 창출에 대해 계속 언급하지만 사실상 비영리단체나 인권단체에서 하는 일은 일자리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업비를 지원해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쓰되 인건비로는 사용이 안 되게 시스템이 설정되어 있는데, 비영리 단체나 인권단체의 경우 인건비는 없어도 사업비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활동하는 데 어려움을 낳죠. 국가와 지자체가 비영리단체와 인권단체를 우리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조직이라고 사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익활동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보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내야만 일자리로 보는 개념 자체가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Q. 최근에 갖게 된 고민이나 관심 가는 이슈가 있다면?

‘기후위기’와 ‘동물권’ 문제가 중요하게 와 닿아요. 인간이 값싼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서 동물을 생명이 아닌 도구와 음식으로만 다루어온 결과 기후위기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까지 이어졌어요. 기후위기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차별과 혐오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거에요. 코로나처럼 우리 일상에 녹아든 전염병으로 취약계층은 더 큰 피해를 입습니다. 노동과 경제적 문제 때문에 전염병에 쉽게 감염되고 더 큰 피해를 받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기후정의’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저희는 이제 ‘기후위기’, ‘기후정의’ 문제도 권력 문제, 다양성과 인권의 문제로 풀어내서 사람들이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구로구 내에서 활동하고 싶고, 다루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다면?

구로구가 지자체로는 최초로 문화다양성조례를 통과시킨 지역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항상 구로구가 다양성의 도시로 성장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다양성과 포함의 가치를 바탕으로한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갖춘 구로구가 되는데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다양성 훈련이나 인권 교육 문제가 공교육에서 많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공교육이 당장 변화할 수 없다 하더라도 지역사회의 힘을 통해 기반을 마련할 수 있잖아요. 누구나 다양성훈련의 기회를 제공받고 제가 가르치는 교육에서 만난 이들뿐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교육을 통해 변화할 수 있다면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어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든 차별과 혐오로부터 안전한 커뮤니티 공간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학벌, 나이와 상관없이 구로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청소년들이 언제든지 안전함을 느끼며 머물며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제공해주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구로구공익활동센터에 하고 싶은 말씀.

구로구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많은 공익활동 단체와 개인활동가들을 지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처럼 저희 단체를 알려주시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큰 환경 단체나 구호단체들의 경우 모금을 위해서도 돈을 많이 투자하고 홍보하는 편이지만, 저희같은 작은 단체들은 사실 모금이나 홍보에 쓸 수 있는 돈이 없거든요. 구로구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이렇게 찾아와주셔서 단체의 이야기를 듣고 많이 알려주시면 저희의 활동에 공감하는 분들이 회원가입으로 뜻을 함께 해주시는 중요한 계기가 될거라 생각해요. 그럼 많은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로구 지역사회에서 공익활동 하는 분들과 서로 도울 수 있는 플랫폼으로서 서로 소통하고 응원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취재: 공익활동기자단 배혜린



한국다양성연구소 홈페이지 https://diversity.or.kr/
유튜브 www.youtube.com/c/한국다양성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