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활동기자단] 우리 잊지 말고, 기억해요. 세월호 남미옥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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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우리 기억 속에 잊지 못할 날짜. 세월호 참사가 있은 지 어느덧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추모하고 슬퍼했던 많은 사람들도 대부분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여전히 이를 기억하고 슬퍼해주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만나보게 될 이 분도 그 중 한사람이다. 현재 8년째 꾸준히 세월호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남미옥 활동가를 만나보았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양천구에서 구로구로 이사온 50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여성, 남미옥이라고 합니다. 현재 저는 개인사업 중인 남편을 도와 경제활동을 하고 있어요. 세월호 참사를 널리 알리고자 8년째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세월호 기억활동으로 노란리본을 만들어 나눔하거나 서명을 받는 일을 하곤 합니다.



Q. 구로구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최근에 구로리본공방이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광화문에 노란리본공작소라는 것이 있는데, 안양이나 도봉 같이 다른 지역에서 꾸준히 개인사비로 노란리본을 만드시는 분들이 계세요. 작년에 제가 구로구에 이사를 오고 코로나로 쉬게 되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게 왠지 미안해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내가 리본을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가능하겠다!’ 싶어서 만들게 되었어요. 구로구민과 함께 만들고 싶어서 일주일에 한번씩 구로리본공방을 하려고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코로나 4단계로 조심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화요일 오후 4시 카페 함크에서 모여 노란리본 무료나눔 진행중이에요. 참여 연락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 노란리본: 매년 4월이면 떠오르는 세월호 참사의 상징이다. 2014년 참사 당시 실종자들을 향해 '돌아오라'는 간절한 의미였던 이 노란 리본은, 끔찍했던 참사와 떠난 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추모의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무사귀환을 바라는 의미에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이 널리 확산되었다.

카페 함크: https://place.map.kakao.com/m/962158061?service=search_m



Q. 최근에 하신 활동은 무엇인가요?

원래 전에 양천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중에 2016년도 도시재생 이슈가 있어 그에 관련된 활동에 잠깐 합류했었습니다. 제 첫 활동은 세월호 활동인데 세월호 참사를 알리기 위한 방법으로 도시재생과 함께 미디어로 접근해 활동해보자는 생각을 시작으로 2017년도에 양천 마을라디오 줌인네거리에 합류했습니다. 2년동안 일주일에 한번 정도 세월호 참사에 관해 우리동네에는 이런 일이 있고 앞으로 이런 일을 예방하기 위한, 또는 세월호는 지금 어디까지 진행되어가고 있는지 방송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이사를 오면서 올해 있었던 마을공동체 라디오 교육을 통해 구로FM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지나 세월호 일을 아예 잊어버린 사람들도 많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세월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른 이슈와 섞어 같이 이야기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리본을 만들면서도 확산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구로구에 이사 왔으니 세월호 활동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나부터 먼저 알리고 합류할 사람들을 더 구해보려고 했습니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자는게 노란리본을 달고 기억하는 의미와 같아서 <사람이 사람에게>라는 마을 방송을 시작해 가족, 직장 동료사이에 하고 싶지만 못했던 말을 대신 제가 직접 전해 이야기 해주는 팟캐스트 방송입니다. 구로 FM이라고 검색창에 치면 나와요.
구로 FM: https://m.podbbang.com/channels/9462


Q. 이렇게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원래 세월호 사건이 있기 전까진 저도 공무원생활도 하고 평범하게 아이 양육하면서 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정원 댓글사건이 터진거에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죠, ‘아 내가 내는 세금으로 이런 일을 하고 있어도 되나,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하는 훈련받은 국정원 공무원들이 책상에 앉아서 댓글을 달고 여론을 왜곡시키고 정치를 하고 있었다니’ 그 생각에 분개하여 광장으로 나갔습니다. 그때가 아마 2013년도였을 거예요. 당시 다양한 이슈로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있었던 게 기억나요. 그러던 중에 2014년도에 세월호 사건이 터졌죠. 그때부터 각종 이슈들이 세월호 참사로 관심이 확 쏠린 거예요. 그 날 이후부터 더욱 더 가만히 있지 못하게 된 것 같아요. 그냥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고, 1인 시위 서명을 받기도 하고. 정확히 원인규명도 안됐고, 유가족분들이 진상요구 활동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나 혼자 그만두고 나올 상황도 못되었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해야겠다.’ 그 생각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론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사람들의 관심을 잃어갈 당시 유가족분들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활동하는 지역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2015년부터 직장도 그만두고 아예 합류하게 된 거죠.


Q. 오랜 기간 활동하시면서 얻은 변화나 영향은 무엇인가요?

거의 7년가까이 활동하면서 삶의 의미를 많이 얻은 것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방명록에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말을 적은 적이 있는데, 제 마음이 딱 그거였어요. 미안하다는 의미는 나 또한 40대 넘은 기성 세대로서 이런 일을 겪게 한 데에 대한 책임이 크다고 생각해요. 어른으로서 이런 사회를 만들게 한 책임. 그런 점에서 또 세월호 문제에 각성이 되었죠. 그러면서 삶에 대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시험을 치루고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것처럼 저도 어른으로서 어느 목표라는 것을 가지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가족과 건강하게 잘 사는 것만이 저의 인생 목표였는데, 세월호 문제를 계기로 우리뿐 만이 아니라 더 넓은 시각으로 미래에 대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점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시민으로 가게 된 과정이 저의 7-8년에 녹아있습니다. 민주주의에 걸맞는 시민으로 제대로 된 시민의식을 가지고 주체성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유가족 같은 분들이나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시대에 걸맞는 시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Q. 활동을 하면서 힘들었거나 어려운 점이 있나요?

저는 사실 사람들을 막 만나고 그런 걸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세월호 문제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sns 활동을 하겠지만 그런 수준도 못된다고 생각했고,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나 자신을 고립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을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고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며 서로 관계를 맺어가면 보람을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이사를 와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막막하기도 해요. 요즘은 코로나로 잘 모이지도 못하고 경로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니까요.


 Q. 구로구 시민들에게 세월호 문제에 어떻게 관심가지게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 해보신 적 있는지요.

앞서 말했듯이 제 성격도 적극적이지 못하다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관심갖게 할 것인가 제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요. 저는 이렇게 저같이 쑥쓰러워서 적극적으로 경로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보다 적극적으로 환대해주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혼자서 세월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건 누군가가 손 내밀어주지 않으면 계기가 마련되기 힘드니까요. 저 또한 적극적으로 환대하고 그런 성격은 못 되기 때문에 시민단체나 공익단체일수록 좀 더 환대해주고 적극적으로 대해주는 태도를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런 공익에 대한 가치를 지키고 활동을 해야 한다면 거기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환대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연습을 따로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고요. 우리 사회는 젋은 사람은 폐가 될까봐서, 혹은 기성세대들은 표현하는 거에 대한 어려움을 많이들 겪고 있는데 '서로 함께해요'하고 스스럼없이 권유하고 세련되게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Q. 세월호 관련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이 있나요?

아무래도 세월호가 인양되어 바다 위로 올라왔던 일이겠죠. 박근혜정권때는 뭐를 해도 안되고 시민단체들도 방어위주의 활동만 했습니다.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없었어요. 노란리본을 달고 있으면 사람들을 무조건 검문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5.18광주때 이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80년대 광주 사람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40년이 지나도 이러한 상황은 바뀌질 않고 있구나’ 고립된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때, 배가 올라온 거죠. 계속 해서 지기만 하던 싸움에서 처음으로 이긴 거예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겠구나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원래는 미수습자분들이 아홉 분이었는데 지금은 다섯 분이에요. 네 분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Q. 앞으로의 활동계획이나 정한 목표가 있을까요?

구로구 내에 노란리본 수요처를 곳곳에 만드는 것이 저의 목표인데요. 주민들이 항시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노란리본을 가져가실 수 있게 하고 구로구민이 모두 다 노란리본을 달게 하는 게 제 목표예요.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서 리본을 만들고 단합도 하고 싶어요. 단톡방에 노란리본을 몇 시에 만들건데 관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와 달라고 해서 같이 만들기도 해요. 이 구로구공익센터에도 처음 와봤는데 이 공간을 활용해서 노란리본을 만든다면 좋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18년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에 입학했는데 그 해에 교육협동조합 일도 하고, 이사 이사장을 하면서 시간적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래서 주변정리를 하고 공부하려고 휴학을 했었죠. 그렇게 임기가 끝나고 학교에 갈려고 했더니만 코로나가 오더라고요. 올해는 그래서 대학원 졸업을 목표로 제대로 공부하고 싶네요. 마을공동체가 제 전공이에요. 마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공부하는 건데, 마을과 사회적경제, 도시경제, 주민자치는 다 하나로 연결되어있거든요. 우리마을만 보는 게 아니라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시각을 넓게 보면서 아이들을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게 했으면 좋겠는 거죠. 지금이 교육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시기를 그냥 손놓고만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Q. 요즘 관심갖게 된 이슈

현재 세월호 관련된 이슈로 오세훈서울시장이 새로 취임한 후 광화문 광장 기억관을 없애겠다고 해서 이 더위에 시민들과 유가족들이 1인시위와 노숙을 벌이고 있는데요. 광장은 시민의 것이고 세월호와 촛불은 뗄레야 뗼 수 없는 것인데 이를 기억조차 못하게 한다니 사람 한 명으로 이렇게 어긋날 수 있구나 마음이 안 좋아요. 다시 또 이런 참사가 반복되질 않기 위한 노력을 서울시에서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새로운 이슈라면 환경에 관심이 많이 가요. 우리가 어떻게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되기도 하고, 지구온난화, 감염병 등 무분별하게 지구를 사용한 대가를 지금 치루고 있다고도 하잖아요. 몇 년 전부터 여러 나라에서는 대체에너지를 만들겠다고 하고 있는데, 한국은 원전을 만들겠다고 하고 있죠. 텀블러를 갖고 다니고 플라스틱을 덜 쓰고 싶지만 생각보다 생활에서 실천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사람마다 활동하는 데 총량이라는 게 있다고도 하니까요.


Q. 활동하면서 얻은 고민거리가 있다면?

전 꼭 세월호 참사 피해자가 아니어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이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세월호 사건이 헛되이 되지 않으려면 이 사건 후에 사회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하면 사람들에게 세월호 문제를 전달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해요. 가끔 서명을 받으려하면 어떤 분들은 천안함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시며 왜 이 문제는 다루지 않냐고 하세요. 저도 처음엔 당황했죠. 그러고 집에가서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면서 혼자 스스로 공부하고 설명하는 연습을 해요. 그렇게해서 배우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저는 세월호 알릴게요. 선생님은 천안함 알려 주세요.' 라고 말하면 따지던 분들이 조용히 가시더라구요.


Q. 개인적으로 하시고 싶은 말

개인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마디 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니깐 아이들의 성장보다도 자기 스스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전하고 싶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성장하는 거니까요. 세월호 참사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면서 저 스스로 제대로 살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여태까지 20대 여성은 이래야 하고 30대 여성은 이래야한다는 사회에서 정해진 규정에 맞춰 살아왔어요. 세월호 참사에 관심 갖게 되고 나서부터는 나부터 내 인생을 주도하는 그런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취재:공익활동기자단 배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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